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WWDC2012 |
WWDC에서 본 애플의 미래
-애플의 시대는 계속된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아니다
2011년 8월 24일.
스티브 잡스가 애플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뒤 많은 사람들이 애플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그리고 정확히 6주 후에 잡스는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잡스는 애플의 처음이자 끝인 존재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잡스 사망 직후에 애플의 미래에 대해 어둡게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디즈니는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난 후 모든 사람들이 “월트라면 어떻게 했을까”만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회사가 망가져야했다. 디즈니가 다시 회복하는데에는 수십년이 걸렸다.
애플도 디즈니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도 월트 디즈니의 선례를 밟을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팀쿡이 회사를 맡은 이후에도 애플은 흔틀리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스티브 잡스 사후 CEO후보로 조나단 아이브, 필 쉴러 등을 거론했으나 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사회는 팀 쿡 이외에 고려해본적이 없었다. 이사회는 잡스가 지배하고 있었고 잡스는 당연히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자신의 오른팔인 쿡을 선택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 사후 1~2년이 지나 애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 최고 기업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2014~2015년이 되야 `팀 쿡 시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 2012에서는 팀쿡 시대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올해 WWDC는 과거의 애플과 미래의 애플이 달라진 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컨퍼런스였다는 평가다.
◆애플의 시대는 계속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만들었던 로마제국. 로마제국을 만든 사람은 영웅 카이사르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카이사르가 한 이 한마디 말로 많은 사람들은 로마제국과 카이사르를 동일시 한다.
하지만 로마제국을 완성한 사람은 카이사르가 아닌 아우구스투스 였다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로마사를 연구하거나 당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카이사르보다 때론 아우구스투스를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태평성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우구스투스의 로마를 건드리지 못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지금 애플 내부에서는 로마 시대와 비유하는 주장이 심상치않게 나오고 있다. 애플 제국을 만든 사람은 스티브 잡스 이지만 애플의 태평성대를 이끌 사람은 팀 쿡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 사후 1년이 안됐음에도 애플 주가는 크게 뛰었다. 잡스가 사망한 지난해 10월초만 하더라도 애플 주가는 400달러를 밑돌았으나 이제는 600달러를 넘었다. 올 연말에는 1000달러까지 간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한 애널리스트는 올 크리스마스 전에 `아이폰5’와 ‘애플TV’가 나온다고 전망하며 애플 주가는 1000달러가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애플이 세게 최대 이통사 차이나모바일과 손잡고 중국에 아이폰을 공급하게 되는데에 대한 시너지도 애플 주가에 호재가 될 것으로 관측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올해 WWDC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엔 WWDC 이후 온통 스티브 잡스 얘기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환상적인 프리젠테이션이 화두에 나왔으며 제품은 뒷전으로 밀린 감도 없지 않았다. 아예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등장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등장한 키노트와 그렇지 않은 키노트의 뉴스 벨류 차이는 컸다. 그가 소개한 제품과 소개 하지 않은 제품에 대해 미디어와 애플 팬보이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올해 WWDC의 주인공은 팀쿡이 아니라 `제품’ 과 `서비스’ 였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WWDC를 마친 후 개발자와 언론 누구도 팀 쿡의 키노트 스타일이나 그의 카리스마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 것이 관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올해 WWDC에서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맥북프로, iOS6, 맥의 새로운 운영체제 OS X(10), 애플의 새로운 지도 서비스 `맵스’ 등을 선보였다.
애플의 지도 서비스 `맵스’는 이미 구글맵이 장악하고 있는 지도 시장에 후발 주자임이 분명하지만 3차원 지도를 내장, 마치 새로운 서비스인 것 처럼 보이게 해 애플 특유의 포장술을 다시한번 과시했다.
애플을 이끄는 주요 경영진들이 각각 제품을 소개했다. iOS 담당 수석부사장 스콧 포스톨이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제(OS) iOS6를 소개했으며 글로벌 마케팅을 책임지는 수석부사장 필 쉴러는 애플의 새로운 하드웨어 제품군 출시를 안내했다.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는 영상으로 나와 새로운 맥북 시리즈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고 디자인 됐는지 소개했다. WWDC에 참가한 개발자들은 아마 조나단 아이브도 무대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세히 소개했다.
이 가운데 팀 쿡의 역할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직 애플만이 이렇게 완벽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결합한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는 오프닝 소개와 클로징 멘트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다. 무엇보다 스티브 잡스가 키노트 마지막에 하던 `한가지 더(One more Thing)’도 없었다. One More Thing을 기대했던 개발자들은 적잖이 실망했지만 이 것이 팀 쿡의 스타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개발자들이 적응해야 한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애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결정했다.
아이폰,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디자인에서 부품, 제품의 이름조차 스티브 잡스가 결정했다. 스티브 잡스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벤처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와 몇명이 회사를 이끌어가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제품에서 소외된 직원들의 서운함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애플이 비밀주의는 유명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애플이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지키지 못하면 해당 직원은 해고된다. 제품 발표 전에도 홍보를 삼가하는 것은 애플의 오랜 전통이다.
팀 쿡이 CEO를 맡은 이후 애플은 이 같은 카리스마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굴러간다는 징후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즉, 이제 애플은 예측 가능한 회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장점은 철저한 비밀주의에 이은 깜짝쇼에 있었지만 이제 비밀주의도 점차 지키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WWDC에 나온 제품은 거의 미디어들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엔가젯, 기즈모도, 올씽스디와 같은 전문 매체들이 각자의 소스를 토대로 만든 기사 대부분 정확했다.
올해 WWDC 전에 언론들은 맥북의 제품군 6가지 중 5가지에 대해 메이저 업데이트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며 애플이 지도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iOS6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는 미디어가 많았다.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애플은 그대로 제품을 내놨다. 스티브 잡스였으면 `대노’하고 뒤집었을 일이다.
팀쿡 CEO는 올씽스디 컨퍼런스 `D10’에 나와 “점차 비밀주의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애플이 내놓을 제품을 예측하는 것은 이제 특종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애플의 핵심 제품 주기도 예측 가능한 수준에 접근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아이패드는 1월, 맥북 시리즈와 iOS 등 운영체제는 6월 WWDC에서, 아이폰은 9~10월 이벤트에서 발표하는 주기를 고정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폰도 WWDC에서 발표하고 맥북은 발표가 없는 등 혼선이 많았다. 특히 “아이폰은 새 제품 출시후 1년 전에는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외신에서 아이폰5가 9~10월쯤 내놓을 것이란 예측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특히 올해는 2년만에 `폼펙터’가 바뀌는 해다. 폼펙터란 제품의 외형이 되는 기본 틀이다. 아이폰3G가 둥근 모양의 뒷태에서 아이폰4, 4S에서는 사각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후 2년이 지난 올 연말에 폼펙터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때문에 아이폰5(가칭)이 올 연말 출시되고 내년에는 아이폰5S, 내후년에는 아이폰6가 되는 순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아니다
이처럼 팀쿡이 이끄는 애플 시대는 로마 시대를 연상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 `팍스 로마나’와 같은 태평성대, 즉 `팍스 애플리아’는 아니라는 점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삼성전자 등 도전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달리 경쟁사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CEO가 될지 모른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제국을 완성하겠지만 결코 주변 국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국가가 되는 꼴이다.
WWDC에서도 애플은 경쟁사이자 협력사인 삼성을 조롱했다. 팀쿡의 키노트 속 동영상에서 아이폰의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Siri)는 “난 매우 흥분되는 삼성의 신제품을 좋아한다. 휴대폰이 아니라 냉장고”라고 말했다. 휴대폰 사업을 비꼰 것이다.
이 같은 태도는 특허 공세에서 두드러진다. 애플은 삼성에 대해 비상식적인 특허 공세를 하다가 결국 구글을 잡고야 말았다. 최근 미국 연방법원 캘리포니아지원에서는 구글의 대표 스마트폰(플래그십)이며 순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갤럭시 넥서스의 예비판금을 명령했다. 이에 앞서 갤럭시 탭 10.1도 제재했다. 애플은 이 소송에서 대국의 모습은 커녕 `옹졸한’ 모습을 보였다. 팀쿡은 지난 1분기 실적보고 컨퍼런스 콜에서 “자신이 법정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점유율의 장기적 손실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갤럭시 넥서스가 자사의 시장 점유율을 손상시켰다고 주장한 셈인데 사실 갤럭시 넥서스는 출시된지 7개월이 지난 구형 스마트폰에 불과하다. 수량으로는 갤럭시S2가 더 많이 팔렸다.
애플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모든 안드로이드 폰 제조업체들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피나는 복수의 연속인 셈이다. 점유율을 `아주 조금’ 올리기 위해 존경받지 못한 길을 택했다. 세상에는 애플 팬보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글폰, 삼성 갤럭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준 셈인데 소비자들은 애플의 행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