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상 휩쓴 뮤지컬 ‘원스(Once)’의 비결

2012-10-22 01:32 오전
손재권



뮤지컬 원스(Once) 리뷰

 

원스 포스터 앞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다 재미있다? 그런것은 아니다. 뮤지컬 대사를 이해 못해서 뭔지 모르고 지나가는 장면이 한두 컷인가. 스토리를 잘 모르고 노래도 귀에 익지 않으면 재미없게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2009년에 본 브로드웨이 뮤지컬 ‘슈렉’과 2010년에 본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위키드’는 스토리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끝나고는 “재미있다”고 평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시카고’ ‘캣츠’등 정말 재미 있었던 롱런 레파토리와 경쟁하는 새 뮤지컬에 대한 기대감은 뉴욕에 가면 반드시 봐야할 것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올해 토니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분을 휩쓴 뮤지컬 ‘원스(Once)’를 봤다. 2007년에 나온 영화도 너무 좋아했는데 뮤지컬을 다 본 후 영화 못지 않은(때론 뛰어 넘는) 감동을 받아 다른 관객과 함께 기립 박수를 쳤다.

개인적으로는 브로드웨이(런던 웨스트앤드 포함) 뮤지컬로는 ‘오페라의 유령’ 이후 가장 뛰어나고 감동을 많이 받은 뮤지컬이었다(나는 유명하다는 뮤지컬은 빼놓지 않고 봤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왜 원스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인지 알게 됐다.
좀 더 의미부여하면 돈이 많이 들고 배우가 때로 등장하는 설치 뮤지컬(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슈렉, 스파이더맨, 라이언킹)에 익숙해진 관객의 마인드를 바꿔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1. 원작과 같은 그러나 많이 다른.

전체적인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가난한 남자 연주가가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체코 이민자를 만나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는 내용이다. 남자가 여자와 뜨겁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해피엔딩도 아니고 새드엔딩도 아닌 미지근한 결말이 영화의 원작인데 뮤지컬에서도 내용이 같다.
노래도 같다.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받은 ‘Falling Slowly’와 내가 좋아하는 ‘If you want me’ 등의 노래가 대부분 나온다.
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아마 우울한 배경의 아일랜드 더블린을 활기찬 뉴욕의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을 것 같다. Falling Slowly도 어찌 들으면 우울하고 스산한 노래다. 그런 우울하고 루저스러운 노래를 뮤지컬로 올린다면 망했을 것. 그래서 배경을 펍(Pub)으로 바꿨다.
하지만 제작자는 무대를 펍으로 바꿔 신나는 분위기를 만드는 김에 아예 극장 전체를 펍처럼  바꿨다.
표를 받고 극장에 들어가면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하고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고 한다. 보통 뮤지컬이나 연극들은 암전 이후 시작하기 마련인데 그런 통념을 깨고 배우들 전원이 미리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대 뒷편에도 펍 분위기로 바꿨고 중간 휴식시간에는 아예 관객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간단한 음료도 살 수 있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이렇게 무너트렸다.

2. 배우들이 연주하고 노래한다.

뮤지컬은 오케스트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장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노래하고. 이 것이 공식처럼 돼 있다. 뮤지컬 ‘시카고’는 오케스트라를 무대위에 올려놓는 파격을 선보여서 더욱 인기를 끌었고 ‘스위니토드’도 배우들이 연주를 하고 노래도 좋아서 사랑을 받고 있다.  
뮤지컬 ‘원스’는 오케스트라가 없다. 왜냐면 배우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대가 곧 공연장 같다. 때문에 뮤지컬 원스를 보면 한편의 콘서트를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 ‘원스’의 음악을 현장에서 들을 수 없을까? 하는 갈증(실제로 한국에서 있었던 원스 콘서트는 티켓 판매하자 마자 매진이 돼 화제가 됐다)이 있었는데 뮤지컬을 보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없애서 무대와 관객과의 거리도 좀 더 좁혔다. 이는 좀 더 많은 티켓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 뉴요커들이 좋아하게끔 만들었다

‘원스’를 보면서 한국에서 각색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했는데 이 뮤지컬은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맛을 살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차라리 재해석을 하는게 낳다. 왜냐면 뉴요커들이 좋아하게끔 ‘외국 악센트’를 코믹 요소로 넣었기 때문이다.
원작 원스에서 여 주인공이 체코 출신 이기는 한데 체코 악센트를 심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를 봤음에도 여자 주인공이 체크(체코인) 인지는 뮤지컬 보고 알게 됐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체코 악센트와 체코식 영어를 심하게 쓴다. 그리고 배경이 아일랜드 더블린이긴해도 아이리시 악센트도 심하게 쓴다.
사실 아일랜드에 가면 심한 아이리시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이 것은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아이리시 악센트가 심하면 미국인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런데 배우(주인공은 아님)가 심한 아리시시 악센트를 쓰면서 연기를 한다. 그리고 여 주인공도 서툰 체코식 영어로 대화를 한다. 이 것은 아일랜드 이주민이 많은 뉴요커들이 본다면 박장대소할 요소다.
물론 영어는 영어일뿐인 우리는 그런 미세한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너무 재미있는 요소이고 실제로 현장에서도 체코식 영어, 아이리시 영어가 충돌할때 가장 많은 웃음이 나왔다.  
“I Kill you” 등등 매우 거친 영어는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의 경우는 슬랭 아니면 거의 구사하지 않는데 외국인들은 가능하다. 실제 무대에서도 여 주인공이 서툰 영어를 귀엽게 구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관객들이 많이 웃었다.
체코 여성들이 아일랜드에 가서 아이리시 남성과 결혼을 하려 하는 것도 크게 와 닿을 수 있는 포인트다.
한국인들은 잘 이해 못하겠지만 체코, 헝가리 등 동구권 여성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 위해 영국이나 아일랜드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것이 여전히 꿈(?)인 상황이다.
여성 이민자들의 남모를 속사정인데 주요 무대가 아일랜드라고 ‘이주민들의 도시’ 뉴요커들이 모를리 없다. 오히려 뉴욕이 아닌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잠시 비켜갔을 뿐 여성 이민자들의 고충과 현실은 고스란이 뉴요커의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욱 관객의 가슴에 파고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무대가 커야 한다는 공식의 파괴

관객들이 뮤지컬에 대한 눈높이가 크게 높아진 것은 ‘오페라의 유령’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 전환과 화려한 무대, 아름다운 음악. 배우들의 열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무대 때문에 보고 또 봐도 보고싶은 작품이 됐다. 지금도 오페라의 유령을 하는 머저스틱 극장 줄이 가장 길지 않을까 싶었다.
관객들은 오페라의 유령처럼 무대가 화려하고 배우들이 때지어 나오며 무대에 공이 많이든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도 돈 많이든 무대로 ‘4대 오페라’의 칭호까지 얻게 됐다.
하지만 이런 ‘클래식’ 말고 최근에 나온 작품치고 ‘대작’으로 성공한 작품은 많지 않다. ‘스파이더맨’은 막대한 투자에도 평단의 평가는 싸늘했다(물론 스파이더맨이 형편없다는 것이 아니다). 브로드웨이가 ‘돈의 수렁’에 빠질 때 쯤 나온 저예산 뮤지컬 ‘원스’의 빅히트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미있으며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기본’을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원스 유튜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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