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해독(Digital Detox)이 필요하다(1)
-연결성이 사회를 규정한다.
예전에 ‘한국은 스마트폰 후진국’ 이란 기사를 쓴적이 있다.일반 휴대폰과 인터넷 보급률은 높지만 스마트폰 보급은 뒤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인 2008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10위권 밖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라고 하면 PDA를 뜻하는 말이었다. 심비안이 스마트폰 OS 1위를 하고 있었고 윈도모바일(윈도폰의 전신)이 OS라며 명함을 내밀던 시절이었다.
아득한 먼 얘기 같지만 불과 4년전 일이다.
지금은(2012년) 스마트폰 보유율이 무려 65.3%나 된다(2012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 2011년 조사에서 31% 였으나 1년만에 두배로 늘었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국가이며 2위가 미국으로 50%가 갓 넘는다.
이처럼 급속한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해 많은 에피스드가 나오고 있다. 그냥 이야기 꺼리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다양한 사회 현상은 이제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모바일족’ ‘스마트족’ ‘수그리족’ 등 현대 인류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스마트폰 ‘수그리족’ 등장
–스마트족 500만 … 출퇴근하며 모바일 공부
–스마트폰 뱅킹 2000만 시대 .. 은행들 모바일 잡아라
–모바일족 .. TV보면서 스마트폰 만지작
아침에 일어나자마다 스마트폰을 찾고 자기 전에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반응을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중독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살겠다는 ‘노모포비아(Nomophobia)’란 단어는 옥스포드 선정 올해의 단어 후보에 까지 올랐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휴대폰을 소지한 미국인 29%는 휴대폰 없이는 살 수 없다(cell owners describe their cell phone as “something they can’t imagine living without.”)고 답했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미국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중독’은 더 심각하다. 시스코가 2012년 12월 발표한 ‘시스코 커넥티드 월드 테크놀로지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Y세대(18~30세)의 90%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4명 중 3명은 침대에 나오기 전부터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한국에서는 97%가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침대에 나오기전에 스마트폰부터 본다는 대답도 5명중 4명으로 다른나라보다 높았다.
벨이 울리거나 ‘띵동’ 하는 알림 소리가 나기전에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핸드폰이 나에게 말을 걸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뭐가 없나..”라고 확인한다는 사람들이 전세계 응답자의 60%나 됐고 한국은 한술 더 떠서 77%나 됐다. 이 정도라면 ‘강박’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경향신문 |
카톡 폭력을 고발한 @경향신문 기사 중 |
카카오톡, 중독 넘어 폭력?
한국이 스마트폰 및 인터넷 중독 수준이 세계 평균보다 더 높은 이유는 연구과제임에 분명하다(아직 연구가 안 돼 있는 것이 신기하다. 논문이 수백편이 나올법한데 말이다).
동류로부터 받는 사회적 압박(피어프레셔, Peer Pressure)을 중요하게 생각기 때문에 스마트폰 없으면 바보 취급(솔직히 나도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그렇게 생각한적이 있다) 하기도 하는 것도 한국적인 현상이다. 물론 한국에 세계랭킹 1위 스마트폰 제조사와 톱 수준의 제조사(LG, 팬택)가 있으며 유난스런 통신사들의 마케팅도 한몫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될수록, 연결 강도가 높아질 수록 그림자도 짙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학교내의 ‘카톡 폭력’은 세계 교육계, 심리학계, 사회학계에 발표할만한 수준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카카오톡 왕따, 카카오톡 폭력이 있다. 카톡을 안하면 왕따 당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한반의 교실에서 나만 빼고 카톡 대화방이 열려서 친구들이 나 빼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나만 빼고 주위에서 대화를 주고받고 키득키득 거리며 정보가 교환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살에 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카카오톡 왕따 때문에 여고생 자살. 2012년 8월 기사).
최근에 페이스북이 메신저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스마트폰 메신저때문에 학생이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면 서비스를 재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보도한 방송 기사(SBS 2012년 12월 19일, 지금 교실은 스마트폰 방)를 보면 “실제로도 이럴까?”하고 믿기 어려울 정도 모습이다.
취재를 위해 학교에 동의를 구하고 등교시간 전에 한 초등학교 교실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기사에서 그린 초등학생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의자에 앉자마자 스마트폰부터 꺼내 든 한 아이
-스마트폰과 가장 친한 듯 친구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아이들.
–친구와 모여 앉은 쉬는 시간에도 시선은 역시 스마트폰에 고정되고 수업 종이 울려도 그만두질 않는다.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가족과의 외식 자리에서도 스마트폰의 구속은 계속된다. 한 손에는 젓가락,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여중생.
–네 식구 가운데 2~3명이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보니 대화가 이어질 리 만무하다.
–친구들과 뛰어놀기보단 4인치 남짓한 화면을 택한 아이들, 교실은 이미 스마트폰 방으로 변했다.
솔직히 말하면 낯선 풍경은 아니다. 비단 어린이들만의 일은 아니니까. 초등학교를 중고등학교로 바꾸고 직장으로 바꾸고 집으로 바꿔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을 여렵지 않게 상상하게 된다. 술자리에서도 카톡하고 가족과의 자리에서도 페북이나 트위터하는 가장도 적지 않다.
이제 커넥티드가 사회를 규정한다
즉, 문제는 인식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답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중독이 문제이긴 한데 그렇다고 기존에 피쳐폰을 사용할 수도 없고 스마트폰 사용을 중단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물을 지은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We shape our buildings, then they shape us)“고 말했다.
면대면 접촉보다, 전화보다,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연속적(None Linear)’인 연결 때문일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의무’가 있는 면대면 접촉이나 전화보다 시차를 두고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나 스마트폰 메신저가 더 통제 가능하고 연결에 대한 의무가 덜 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편끝)
*우리는 왜 연결하는가?에 대한 글은 별도로 작성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