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바마와 롬니가 백악관에서 회동을 했다. 오바마가 롬니를 초청해 점심을 한 것.
대선에서 치열하게 싸운 두 후보가 우리식으로 ‘오찬’을 했다는 것은 형식, 내용면에서 크게 뉴스가 될만한데 의외로 조용히 지나갔다.
백악관에서 ‘두 사람의 회동’ 이외에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고 실제로 배석자 없이 오바마와 롬니 단둘히 점심을 했기 때문에 둘이 무슨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기자들이 하도 뭐라고 하니 뒤에 백악관이 간단하게 브리핑한 정도다.
추측하건데 ‘승자’와 ‘패자’가 갈린 상황에서 아마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패자를 배려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최대한 보도를 자제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고 아니면 롬니 측에서 ‘조용한 방문’을 요청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선을 마친지 한달도 안되 두 후보가 만났다는 것이며 서로 “미국이 직면한 위기 극복”에 공감하면서 협력을 다짐했다는 것이다.
이는 ‘보도자료’나 ‘레토릭’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두 후보는 선거 캠페인 중간에 선거를 마치자 마자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공화당의(롬니는 민주당의) 협력을 요청할 것이라고 공약을 수차례 했다. 특히 롬니는 “내가 당선이 되면 그 다음날(Day one) 오바마는 물론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 협력을 구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앞으로 나가는 것에대해서는 일치한다”라고 TV토론에서 말을했다. 이처럼 본인이 ‘협력’을 얘기해놓고 낙선됐다고 ‘쌩까는’ 것은 한때 대선 후보로서 체면이 안서는 일이기 때문에 백악관 점심 회동에 참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과 밋 롬니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악수하고 있는 장면.(AFP=연합뉴스) |
사실 선거는 “너죽고 나살자”는 게임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Winner takes all) 게임이다. 선거에 실제로 뛰게 되면 ‘당락’ 외에는 앞뒤가 안보인다. 상대 후보는 적이 되는 것을 넘어 인간적으로도 싫어지게 된다. 상대팀을 돕는 사람은 마치 악마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기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야 자기 확신이 들어 더 열심히 뛸 수 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가 소폭 뒤진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착시효과를 고려하면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실제로 롬니와 공화당은 이기는 것으로 확신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의 정치 전문 기자(백악관 출입) 댄 블라츠 기자가 스탠포드에서 강연을 해서 잠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블라츠 기자는 “선거 당일에도 롬니와 공화당은 이기는줄 알았고 진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그제야 조금씩 “질 수도 있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사실 출구조사가 나왔을때도 완전히 ‘패배는’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패배 인정 연설이 좀 늦어졌다”고 말했다. 공화당 깅그리치 상원의원도 NBC 제이레노쇼에 나와서 “정말 질줄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정도가 되면 패배자 롬니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극복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점심을 먹으러 백악관에 갔다. 롬니는 아버니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노렸던 정치인이었고 자식들도 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대를 잇는 미국 정치인들의 (비교적)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국가관, 애국심은 “나도 미국 역사의 일부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정치인으로서 나보다, 대통령 직전까지 갔던 사람으로서의 나”보다 위대한 것이 ‘인간의 사회적 통념(Conventional Wisdom)으로 만든 미국이라는 나라’라는 미국 정치인들이 공통된 인식이 있기 때문에 승리자의 승리 연설에서도, 패배자의 패배 연설에서도 “미국의 단합’을 줄기차게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선 직후 ‘양대 후보의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치열하게 경쟁한 후 시간이 지나 오히려 돈독해진 사례도 적지 않다.
오바마는 지난 2008년 대선에서는 선거를 마친 직후 존 매케인 후보를 시카고에 불러 저녁을 같이 했으며(이번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을 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에 기용,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오바마의 힐러리 기용은 신의 한수였다고 본다. 2012년 대선에는 빌 클린턴이 적극적으로 오바마를 도와 선거 승리의 1등 공신이 됐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은 2012년 대선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의 포용력을 칭찬하면서 “그는 치열하게 경쟁한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하지 않았나?라고 하면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빌 클린턴은 2기 선거때 싸운 밥 돌 공화당 의원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고 조지 W 부시는 2기때 엘 고어를 초청,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오바마-롬니 회동을 두고 호사가들은 “오바마가 롬니를 상무장관에 기용하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실제로 나오기도 했다(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바마와 클린턴. Team of Rivals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여기에는 ‘경쟁자와 함께하는 팀(Team of Rivals)’ 정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Team of Rivals는 최근 나온 영화 ‘링컨’의 원제 이기도 하고 링컨 대통령의 포용력을 다룬 전기 제목(한국어판 제목은 ‘권력의 조건’)이기도 하다.
링컨이 보여준 Team of Rivals의 정신은 그를 위대한 대통령을 넘어 성인의 위치에 까지 오르게한 힘이기도 하다. 링컨의 정치력은 보수주의자부터 극단적 급진주의자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것에서 왔다는 것이다. 링컨은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고 중도 정책을 펼쳤으며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라이벌을 핵심 동료로 삼았다. 오바마가 지난 2008년 당선될때 “백악관에 단 한권의 책을 들고 간다면 이 책을 들고 가겠다”고 말해서 더 유명해진 책이다.
Team of Rivals는 ‘다른 노선과 생각을 가졌지만 유능한 인재를 주위에 두면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독재 시스템도 민주주의 아래 자유로운 사람들의 에너지를 이길 수는 없다(The Most efficient dictatorship could not never compete with the free energies of a free people in a democratic system)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적도 포용하라’며 성인군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생각과 전략이 달라 지금은 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검증이 됐고 무엇보다 최종 목표가 같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국가에 비유하면 ‘지금은 다른 후보라고 하더라도 최종 목표(국가의 번영, 발전과 국민의 단합)가 같다면’ .. 경영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사업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 목표(매출 신장과 이익의 극대화, 회사의 발전)가 같다면 등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왕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 세력간 균형을 추구한 조선판 Team of Rivals인 ‘탕평책’과도 다르다.
치열하게 선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부적으로는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이 격차를 최소화해서 더 잘살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 정치인이나 국민이나 이견은 없다. ‘위대한 아메리카’ ‘파워풀 아메리나’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스트레스 없이 다 같이 잘먹고 잘살자는 얘기다.
그래서 정치인이 큰 포용력을 발휘하면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칭찬받고 옹졸하게 회전문인사나 하거나 당파적 행동을 하면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오바마가 초기에 힐러리 클린턴을 기용해서 칭찬을 받았지만 이후에 공화당과 대화하지 않고 대립각만 세워서 비판을 받아 “그놈이 그놈이었네”라며 결국 재선이 힘들어지는 결과 까지 초래한 것이다.
한국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 선거 과정은 ‘역시나’고 결과도 ‘역시나’가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정당(Party)보다 캠프 참여 여부가 차기 정부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캠프 정부(Camp Government)’라는 한국 근현대 정치의 특징은 계속될 것 같다.
선거로 인한 상처가 커서 선거 끝나면 완전 ‘죽일놈’이 될 것 같고 패배자는 ‘주홍글씨’를 씌워 영원히 재기를 못하게 할 것 같다.
승자는 세상을 얻은 것 마냥 행동하다가 각 당파별로 흩어져서 약 2000개가 된다는 장차관’급’, 감사 등 자리싸움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아니다”라고 하더라도 잠시 눈치보다가 결국은 ‘자리’싸움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캠프에 몸담고 있는 목적이 바로 ‘자리’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보니 미국 정치는 ‘이상향’으로 ‘반드시 추구해야할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권자, 언론, 정치인 등 사람이 상식 위에 만들고 이것이 시스템이 돼 정착한 그야말로 ‘사회적 통념’이다.
한국 정치가, 선거가 계속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면 그것 역시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왜 투표(정치, 경영)하려 하고 어떤 나라(또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투표(일)하는가?에 대해 우선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러면 Team of Rivals를 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