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퀘이크_4 : 한국의 TV, 방송시장의 진정한 위기가 시작됐다
(2)새로운 TV 생태계 : 4K
2013년 상반기 현재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가전업체들의 미국 TV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TV와 소니, 파나소닉, 샤프는 같은 이름이었으나 중반부터 삼성과 LG가 LCD, PDP 등 평판 디지털TV로 승부수를 띄워 일본 업체들을 따돌리고 글로벌 TV의 대명사가 됐다. 이는 부품부터 판낼, TV 제조까지 수직 계열화해서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춘 것도 원인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삼성과 LG전자는 세대를 앞선 선행투자와 자존심을 건 연구개발을 진행했으며 LCD, PDP, LED로 오는 과정에서의 기술 혁신은 매우 치열했다. 이는 기립박수를 받아도 충분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삼성, LG전자의 승승장구는 일본 업체들에게는 구조조정을 의미했다. 소니는 존재감을 잃고 ‘브라비아’라는 브랜드마저 힘을 잃게 됐으며 PDP에 사운을 건 투자를 한 파나소닉은 판단을 잘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파나소닉 오쓰보 회장이 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됐다.
한국의 삼성, LG는 2000년대 후반부터 사실 자기 자신이 경쟁 상대였다. 스스로 기술 혁신의 채찍을 들었고 매년 놀라운 기술을 선보였다. 삼성과 LG는 동시에 ‘3D TV’ 시장을 이끌었으며 그 다음 ‘스마트TV’로 아이템을 늘렸다.
LG전자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전미 가전쇼(CES)에서 3D TV 마케팅에 사력을 집중했다. CES 센트럴홀 입구에 위치한 LG전자의 3D 전광판은 정말 볼만했다. 삼성은 ‘스마트TV’ 생태계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최초로 TV에 내장된 칩을 바꾸면 마치 새로운 TV처럼 볼 수 있는 ‘에볼루션 키트’를 선보였으며 TV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S레코멘데이션 등의 첨단 기술을 선보였다. LG전자의 스마트TV와 삼성전자의 3D TV도 최고의 시장 경쟁력을 보여주며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from segye.com |
한국산 TV 전성시대
글로벌 시각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소는 평평하게 서 있을 수가 없다. 글로벌 비즈니스는 마치 시소와 같아서 한쪽으로 기울면 한쪽은 올라가게 돼 있다. 글로벌 TV 시장을 둔 한국과 일본 업체들의 경쟁도 마치 시소와 같다.
우선 삼성과 LG가 2~3년간 연구개발과 마케팅비를 집중하며 시장을 만들려 했던 3D TV와 스마트 TV 시장이 의욕만큼 열리지 않았다.
회사의 계획대로라면, 대중에게 광고했던 마케팅대로라면, 언론에 보도됐던 내용대로라면 지금쯤 많은 이용자들이 3D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을 3D로 촬영하고 이를 유튜브에 올려 집에서 3D TV로 안경을 쓰고 이를 감상했어야 했다. 스마트 TV에 내장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집에서 TV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고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를 감상해야 하며 리모콘 대신 손으로 화면을 움직여서 꺼내듯 프로그램을 찾아 TV를 감상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야 했다.
삼성, LG전자가 2011년 CES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고 2012년 CES에서도 위력을 확인한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도 ‘수율’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시하고 기술을 과시하기엔 좋았지만 시장에서 성공 여부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찍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2013년 상반기에 미국 시장에서 세계 최초로 출시하려 했던 55인치 OLED TV를 무기 연기하기도 했다. OLED TV는 선명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지만 양산이 쉽지 않고(불량률이 높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뜻) 정전기에 약한 모습을 모이는 등 아직 시장 성공을 위해 극복해야할 점이 많다. OLED TV가 LCD, PDP, LED와 같이 양산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과 기술 혁신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삼성과 LG전자는 OLED TV 기술 유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삼성과 LG는 한국의 대표적인 ‘프레너미(Frienermy : 친구이자 적이라는 뜻)’ 기업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장해 왔다. 삼성과 LG가 지금 세계 TV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삼성은 LG라는, LG는 삼성이라는 프레너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과 LG은 무엇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2011~2013년 CES에서도 양사는 소비자들이 볼때 크게 차이 없는 비슷한 제품(3D, UHTV, 스마트TV, OLED TV)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CES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삼성과 LG가 혁신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깨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구나..”란 생각이었다. 삼성이 먼저 새로운 것을 내놓으면 LG 임원과 기술진이 엄청 깨질테고 LG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오면 삼성 임원과 직원들이 박살이 날 것이다. 그래서 양사는 2012년 CES에서 55인치 OLED TV를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공개했고 2013년에는 ‘휘는(플렉서블) TV’를 들고 나왔다. 현장에서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많이 휘나, 누가 더 많은 대수의 휘는 TV를 공개했나”를 가지고 서로 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이 휘고 더 큰 디스플레이를 개발하고 전시하는 것은 결코 쉽게볼 수 없는 기술혁신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1년사이에 삼성과 LG가 TV 분야에서 엄청난 기술 혁신을 했다고 느꼈지만 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이 정도면 됐다”는 양사 임직원들의 안도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모적인 기술 유출 공방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
삼성과 LG가 반드시 다를 필요는 없지만 서로 의식하는 에너지를 일본과 중국, 대만 업체들에게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국민 모두가 하는 것이다.
소니의 와신상담
삼성과 LG의 TV 경쟁이 ‘소모적이었다’는 것은 소니를 대표로한 일본 업체들의 반격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소니와 일본 업체들은 2013년 1월과 4월 각각 열린 CES와 방송기자재박람회(NAB)에서 4K 및 8K TV를 들고 나와 ‘벌써’ 시장 장악에 나섰다.
4K TV란 색을 표현하는 화소수가 4000개 담긴 초고해상도(Ultra High Definition) TV를 말한다. 현재 각 가정에 보급된 풀 HD TV(1920*1080)는 2K인데 이보다 4배 화소가 들어가 있어 초정밀 색감 표현이 가능하다.
4K TV는 실제로 보면 입체감이 매우 뛰어나서 마치 3D TV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너무 선명해서 입체감이 드러날 정도라는 뜻이다. 이 것을 보면서 “과연 3D TV가 필요한가..”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OLED TV가 더 얇고 선명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지만 양산이 어렵다고 한다면 4K TV는 현재 양산 기술 수준에서 최고 화질의 TV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니는 2013년 CES에서 모든 TV를 4K로 구현해 공개하고 주목을 받았다.
삼성과 LG는 울트라HD TV로 포지셔닝 했는데 2012~2013 CES에서 OLED TV를 주력으로 내세워 울트라HD TV가 주목을 받지 못한 반면 소니 및 일본 업체들이 ‘4K’란 간결한 용어로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 한국 업체들이 밀린 감이 있었다. 어차피 4K나 UHD TV나 기술 용어라기 보다는 ‘마케팅 용어’라고 한다면 4K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이나 LG가 울트라HD TV를 ‘4K TV’라고 부르며 마케팅을 하기엔 곤란한 상황이 되버렸다.
즉, ‘차세대 TV는 4K이며 리더는 소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소니는 한발 더해 NAB 2013에서 ‘가격’을 크게 낮춰 시장 혁신을 만들어낼 준비를 마쳤음을 과시했다.
소니는 55인치와 65인치 4K TV를 4999달러와 6999달러에 판매하기로 했다. 삼성의 85인치 UHD TV가 4만달러 수준이며 LG의 OLED TV도 약 1만달러 인 것에 비하면 굉장한 시장 혁신을 이뤄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삼성과 LG는 이 정도 가격에는 울트라HD TV나 OLED TV 모두 양산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TV 산업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삼성, LG가 열심히 만들고 있지만 힘에 부쳐 보인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4K 생태계 만들어가는 일본
소니 및 일본 업체들은 TV만 4K로 포지셔닝한 것이 아니라 방송장비와 콘텐츠도 4K로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방송 장비 생태계를 소니를 위시한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니와 캐논, JVC 등은 NAB2013에서 4K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를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선보였으며 동영상 편집 기기 등 방송 시스템도 전부 4K로 한마디로 ‘도배’를 했다. NAB2013에 참가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ETRI, 업체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방송 시장이 4K로 넘어갔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소니는 스파이더맨 등을 만든 ‘소니픽쳐스’를 보유하고 있는 영상 콘텐츠 제작의 선두 주자 중 하나다. 소니픽처스가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디즈니 등 영화 제작사와 함께 4K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 정부도 4K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4년 NHK는 세계 최초로 4K 방송을 시작하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을 4K로 중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8K 실험방송도 2016년으로 로드맵을 맞춰놨다. NHK는 NAB에서 8K 상영관을 따로 설치해서 자체 제작한 방송을 시연하기도 했다.
TV 생태계는 앱을 다운로드 하는 모바일 생태계와 다르다. 영상을 찍어야 하고 화면에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한다. 소니를 앞세운 일본 업체들과 정부까지 나서 2013년 상반기에 TV, 영상장비,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4K’ 일관 마케팅은 위력이 대단해서 지난 4~5년간 부진을 한번에 씻을 수 있는 카드로 보여진다.
일본이 정부까지 나서 4K에 이어 8K까지 총력을 기울여 선점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3D와 스마트TV 생태계를 만든다며 부산을 떤 한국 정부와 삼성, LG 등 한국 업체들이 떠오르는 것과 “타도 한국”이라는 표어를 붙인 방에서 ‘와신상담’하고 있는 일본인이 생각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인사이드케이블’에도 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만 삼성과 LG의 한계란 게, 방송장비 생태계를 소니를 위시한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 한가지밖에 없네요.
UHD니 4K가 본질이 아니라 우리 업체들이 세트TV 시장과 직결되는 방송장비 생태계를 진즉에 공략하지 못한 게 무척 아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