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와 정수기 효과

2013-04-08 11:44 오후
손재권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지?” 
한국에서 많이 하는 질문이다. 새 정부가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를 국정 목표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혼란을 주고 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 혼란함도 ‘창조’로 가는 길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조경제가 한마디로 정의된다면 창조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는 규정되지 않은, 모호함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누구나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거나 널리 펴져 있는 것을 편집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크리에이티브’는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조직(회사)를 혁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애플, 구글처럼 혁신적인 제품(서비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세상을 바꿀 것인가? 한때 잘 나갔다가 가라앉은 회사들은 ‘혁신 DNA’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요새 가장 화제를 많이 일으키는 기업은 ‘야후’다. 인재도 빠져나가고 주가도 떨어진 야후는 마리사 메이어를 영입한 이후 턴어라운드에 성공하고 섬리(Summly) 등 스타트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는데 성공했다. 
우선 구글에 (한참) 밀려 자존심이 상해 있던, 동료 직원을 떠나보내는데 익숙했던 야후 직원들이 반색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소위 ‘듣보잡’ 이력서들이 많이 왔는데 이제는 “아니 이런 스펙을 가진 애가 왜 야후에?”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최근 야후가 전미국에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재택근무 폐지’ 정책이었다. 야후의 결정은 일과 가정 생활의 균형잡힌 삶(Work and Life Balance)이 중요한 과제인 미국 사회에 큰 논쟁거리가 됐다. 
야후의 재택근무 폐지 정책은 ‘일하는 방식’이 고민인 한국 기업에게도 적잖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실 야후의 고민은 ‘재택근무’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시 창조, 혁신의 DNA를 되살릴 수 있을까? 구글처럼 직원들이 창조적인 아디이어를 낼 수 있을까?”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스마트 워킹? 재택근무? 우리도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근무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해서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시도는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관리의 문제가 따른다. 집에서 근무하거나 근무시간과 상관없이 회사를 오가는 직원들을 제대로 관리해서 성과를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스마트 워킹을 장려하기 위해 ‘스마트워킹센터’를 만들고 법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정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여성들이나 사외 근무가 많은 영업직, 그리고 창의적인 일을 원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이 이 같은 근무 형태를 선호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특히 글로벌 혁신의 진앙지 실리콘밸리는 ‘스마트 워킹’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혀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야후 등 플랫폼 기업이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까지 이어지는 101 고속도로와 280 도로는 출퇴근 시간에 서울 못지 않게 막힌다. 혼잡 시간을 피해 출퇴근하려는 것은 직장인의 보편적 심리다. 
더구나 실리콘밸리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엔지니어들이다. 프로젝트에 따라 밤 늦게까지 일하고 늦게 출근할 수도 있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보다는 자유롭게 회사나 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스마트워킹은 실리콘벨리 기업 입사시 엔지니어들의 주요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후가 전 직원들에게 “재택 근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 논란이 됐다.  
마리사 메이어 CEO는 전 직원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다시 혁신 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끼리 얼굴을 보고 토론을 하고 복도에서 같이 식사를 해야 한다. 혁신은 회사 복도에서 나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집에서 일하고 회사에서도 자유롭게 일하는게 상징 아닌가? 그런데 재택근무를 폐지하겠다고?
그렇다. 야후 직원들은 2013년 6월부터 예외없이 사무실에서 전일 근무를 해야 한다. 집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도 이제 서니베일에 있는 회사에 출퇴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셈이다. 야후에 이어 미국의 하이마트 ‘베스트바이(BestBuy)’도 재택 근무 페지 방침을 밝히는 등 확산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재택 근무를 오랫동안 해왔던 뱅크오브아메키라(BoA)나 에트나(AETNA)가 같은 보험사도 지난해부터 재택근무를 없애기도 했다. 
올 초 미국 미디어는 이 소식을 매일 다룰 정도로 이슈화했다. 신문에서는 ‘독자투고’란에 찬반 논란이 개재되고 라디오에서도 찬반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일부 여성들은 “갓 아이 엄마가 된 마리사 메이어가 이럴 수 있냐!!” “출산 휴가를 2주밖에 쓰지 않던 메이어가 재택 근무도 폐지하다니 그녀는 여성의 적이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고 전직 야후 직원은 “야후엔 회사를 안나가고 집에서 놀고 먹으면서 부업까지 하는 직원이 많다. 야후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다. 환영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야후의 이 같은 결정은 ‘삶과 일의 조화’를 추구하는 흐름에 역주행임에 분명하다. 
최근 기업들은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워킹(Smart Working)’ 환경을 갖추고 있고 이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도 회의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전해지는 실시간 이메일과 채팅은 ‘업무’의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이런 문화가 정착 돼 있는 실리콘벨리 기업들은 스마트 워킹을 전세계로 확산시켜서 제품(서비스)를 판매하는데 혈안이 돼 있기도 하다. 스마트 워킹 솔루션(영상 장비, 소프트웨어, 보안 기술, 노하우 등)을 판매 하려면 스스로 이런 문화가 정착되야한다.
재택 근무 폐지는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바꿔 특정 시간(8시~9시) 심하게 막히는 교통난을 해소하고 바꿔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글로벌 노력에도 찬물을 끼엊는 결정이기도 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여성들에게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 결정을 여성인, 그것도 갓 아이엄마가 된 마리사 메이어가 했다는 것에 분노해도 그는 할말이 없다.
특히 재택 근무를 없애는 것은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에 이식시키려 하는 ‘구글 웨이’가 아니다. 메이어는 야후 CEO에 취임한 직후부터 ‘공짜 점심’을 주기 시작했고 전직원에게 원하는 스마트폰을 나눠주는 등 구글 따라하기를 했고 직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구글은 언제든지 집에서도 일하고 회사에서도 일하는 근무 형태가 정착 돼 있고 여성들에게는 유급 출산 휴가를 법에 허용된 3개월에서 5개월로 늘려 인근 기업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래서 다수 미국 기업들과 언론에서는 “야후의 결정은 내부 사정일 뿐이지 전체 미국 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고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야후의 결정이 주는 시사점은  ‘재택 근무’가 아니다. 즉 직원들이 일을 집에서 하느냐 회사에서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혁신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가?”란 것이다. 
회사는 직원들의 생산성을 끌어 올려 최고의 제품(서비스)를 만들어야 하고 직원들의 혁신을 이끌어서 기업 가치를 끌어 올리고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경영자나 직원이나 회사에 다니는 공통된 숙제이기도 하다. 
야후가 멀리 떨어져서 일하는 직원들을 다시 회사에 불러들인 이유는 ‘야후는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존 설리반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는 “혁신을 원하면 교류가 필요하고 생산성을 원하면 재택근무도 좋다”고 말했다. 
즉 유연근무(재택근무)는 직원의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데 효과적이지만 혁신을 이끄는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 창조의 아이디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아이디어를 교류할대 나오고 생산성은 직원들이 방해받지 않고 집중적으로 근무할때 올라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잘라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직원들이 1, 2시간씩 출퇴근하느라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에 집에서 일하고 태풍이 오거나 눈보라가 휘날리는 극한의 날씨에 회사에 출근하느라 고생하는 시간에 집 근처에서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경우 대체적으로 혼자 업무를 처리하느랴 ‘협업’으로 인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디어는 섞여야 나오는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구글은 직원들을 회사로 모으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은 쓰지 않지만 하루 세끼를 모두 주고 회사에 세탁소, 수영장, 헬스장 등 각종 편의시설을 모두 갖추고 회사 밖으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모두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구글플렉스 한가운데 직원식당(찰리 카페)가 있다. 테이블도 넓어서 혼자 먹기 보다는 직원들끼리 같이 모여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 
물론 구글은 재택 근무도 상사 허락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어쨌든 야후는 ‘생산성보다는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워터쿨러 효과(Water Cooler Effect)’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정수기 효과’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무실에 음료를 마실 공간(정수기)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할 수 있게 돼 사내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는 듯이다. 사무실 직원들이 정수기 옆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의도치 않은 생각의 발전으로 이어갈 수 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물을 나르면서 대화를 한 것도 같은 효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리사 메이어가 “혁신은 복도에서 나온다”는 말은 워터쿨러 효과를 노린 것이다. 혁신과 창의는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서 나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 ‘재택근무 폐지’라는 다소 충격적인 조치도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야후 재택근무 폐지 논란’을 좀더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야후는 서비스 혁신을 위해 직원들을 모으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적지 않은 아시아 기업들이 ‘혁신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직원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근태관리’를 위해 붙잡아 두는 사례가 많다. 
임직원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이를 통해 새 혁신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치’때문에 집에 못가고 있다거나 회식 자리가 혹시 상사의 훈화 말씀을 듣는 고통스런 자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여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직장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사항을 듣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흩어져 있는 것이 더 창의적일 수 있을 것이다. 
회사내 정수기가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장소가 아니라 직장 상사나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야후는 회사에 직원들이 모여 혁신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이들이 회사에 혼자 남거나 또는 집에서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마리사 메이어는 스타트업 인수합병이 아닌 야후 직원들이 혁신 역량이 쌓였다고 판단하면 그때는 다시 ‘재택근무’를 부활할 것이다. 


2 개의 댓글
2013-04-09 1:42 오전

자발적인 참여가 혁신의 발단이 되고, 거기서 생산성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죠.
쉽게 자신의 의견을 펴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오랜 세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덕목이 된 유교사상이 발목을 잡는 것일까요?
유교사상의 덕목과 이러한 서구적인 토론문화가 장점이 잘 섞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2013-04-15 11:34 오후

네 맞는 말씀이세요. 저도 같은 고민입니다. 한국의 독특한 위계질서에서 나오는 장점인 '스피드'와 서구의 네트워크 사고 방식의 결합이 한국의 대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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