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자들(Disruptors) … 최초의 ‘커넥티드 북’을 펴내며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얘기해보라고 한다면 ‘독서여행’을 꼽고 싶다.
지난 2005년 11월 결혼한 후 아내와 유럽, 미국, 인도, 중동 등 많은 여행을 갔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나는 여행 중 하나는 2008년 2월에 갔던 남이섬 독서여행이었다.
당시 설 연휴가 길어서 아내와 함께 어디에 갈까 하다가 독서여행을 하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생각을 나눈다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딸 현서가 커서 같이 독서여행을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디오만 있고 인터넷과 TV가 없던 남이섬의 ‘정관루’에서 묵었는데 당시 들고 갔던 ‘생각의 탄생(미셀 루번스타인저, 에코의 서재)’과 ‘차이의 존중(조너던 색스저, 말글빛냄)’의 내용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동안 읽었던 모든 책의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순간에 읽는 책은 더 많이 기억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역시 책은 ‘무엇을’ 읽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읽는가도 중요한 것 같다.
바야흐로 모바일 혁명의 시대다. 디지털과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 ‘파괴자들’에서는 지금 이 시기는 근본적으로 생활 양식이 바뀌는 혁명의 순간이며 마치 안개처럼 다가온다는 ‘은은한 혁명(Ambient Revolution)’의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쯤되면 책은 지상에서 사라지거나 아니더라도 첨단 기술에 의해 상당부분 대체됐어야 했다. 특히 이북(e-book)이 보편화되고 앱북(AppBook)도 등장하는 등 새로운 수단이 나옴에 따라 종이책의 운명도 풍전등화 같았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그렇게 되지 않았다.
종이책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일부 전문가가 주장하듯 종이책이 넘기는 느낌, 종이의 질감 때문이 아니라 책을 통해 얻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경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에 몰입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몰랐던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희열’을 잊지 못한다.
타인의 삶을 책을 통해 대신 경험하며 경영의 구루들이 평생을 통해 쌓아온 지식을 책 한권으로 읽고 알아내는 것은 오직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독자들은 종이책이 주는 몰입감과 이로 인해 머리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사랑한다. 이것은 어떤 디지털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인류가 존재하는 단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종이책을 읽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성인 1인당 월 평균 독서 권수는 0.8권으로 한달에 한권도 안읽는 성인이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새롭지 않은 것이 예전에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면 신문이나 잡지, 책을 읽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예외없이(책 읽는 사람이 예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들여다 본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OECD 꼴찌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처럼 ‘책을 안읽는 사회’가 된 이유에 대해 중고등학교 시절 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지 않아서나 책읽는 문화가 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종이책을 읽는 독자수는 줄었지만 인당 처리하는 정보량은 과거에 비해 몇배는 늘었을 것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들여다보는 뉴스와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소화하는 정보양은 과거와 비교할 수가 없다. 다만 ‘어떤’ 정보를 소화하고 있는가의 이슈인 것이다.
왜냐면 독자들의 ‘읽기 Reading’ 경험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더이상 책이나 잡지, 신문 등 ‘종이’로된 매체만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바일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흐르는 콘텐츠도 읽는 것이며 심지어 방송에 나오는 콘텐츠도 읽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읽는 콘텐츠는 종이책에서 읽는 것과 다르며 소셜미디어에서 읽는 콘텐츠도 종이책에서 읽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매체의 특성이 같을 수가 없다. 종이책은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상호 소통이 불가능하다.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를 친구와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오직 책을 읽는 독자만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는 독자와 저자가 소통이 가능할뿐만 아니라 풍부한 멀티미디어 경험을 줄 수 있다. 독자들이 글을 읽고 댓글을 달 수가 있고 이를 저자가 알 수 있다. 멀티미디어에서는 사진이 중요하며 동영상도 활용할 수 있다.
책의 재정의 : 종이책과 디지털을 연결하다
이쯤되면 ‘책 Book’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종이로 된 책만이 ‘책’으로 불릴 수 있는가. 이북은 책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북은 책인가. 모바일과 소셜이라는 새로운 기술, 즉 디지털을 접목시킬 수는 없는가 등이다.
‘파괴자들(Disruptors)’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종이책과 디지털의 장점을 결합시킬 수는 없을까라는 것이었다.
종이책의 몰입감과 상상력도 살리고 디지털이 가지는 상호소통(Interaction) 기능과 풍부한 멀티미디어 경험도 줄 수 없을까?
종이책은 한번 출간하면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수정을 하거나 업데이트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 것이 과연 불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디지털의 특징은 항상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점인데 ‘종이책’은 왜 업데이트가 안되는가.
새 정보를 얻기 위해 왜 개정판을 또 사야 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의심을 품게 됐다(실제로 좋아하는 작가의 개정판을 구매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읽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책을 구매한 독자는 책을 사는 순간 이미 ‘과거’ 얘기를 읽게 되는 것이다.
특히 ‘파괴자들’과 같이 기업들의 변화를 그린 책은 더욱 그렇다. 애플, 구글, 아마존, 삼성 등은 매우 빠르게 실행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변화를 책에서는 반영할 수는 없을까? 이들에 대한 저자의 바뀐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개정판을 다시 사야 하는가?
이것은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콘텐츠 소비자들은 이미 저 멀리 가 있지만 ‘종이책’은 ‘서점’은 ‘출판사’는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디지털 콘텐츠 생산자, 유통업자들도 진정 독자들이 원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은 종이책의 경험을 디지털로 그대로 옮겨진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의 장점을 극대화한 새로운 읽기 경험을 원한다.
실제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종이책 독서율이 전자책 독서율보다 12배나 많으며 전자책의 독서율은 1%, 평균 이용시간도 1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뜻은 무엇인가. 전자책, 이북은 실제 ‘디지털’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독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저자나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지 않는다거나 이북 구매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종이책의 몰입감을 살리면서 디지털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커넥티드 북(Connected Book)’이었다.
‘파괴자들’은 내용이 혁명적이고 급격한 변화 그리고 문샷 씽킹, 앙트러프러너십(창업가 정신) 등에 대해 강조하는 만큼 책의 형식도 기존 종이책만을 출간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도전해보고 싶었다.
커넥티드 북이란 무엇인가?
커넥티드 북은 말 그대로 ‘인터넷에 연결된 책’이란 뜻이다. 종이책을 PDF 버전으로 담은 이북이 아니다. 종이책의 장점과 인터넷의 장점을 연결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의 원고는 구글 닥스(Google Docs)로 작성됐다. 독자들은 책을 구입함과 동시에 책에 대한 디지털 접근권을 갖게 된다. 즉, 저자의 구글 계정을 독자와 공유하는 개념이다.
종이책은 디지털 초대장이다.
독자가 구글 계정을 가지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안드로이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아이폰, 아이패드 이용자라도 구글 드라이브 앱을 다운로드 받은 독자라면 보유한 ‘어떤’ 디바이스에서도 내용을 볼 수 있다. 구글 외에 별도의 앱을 다운로드 받을 필요가 없다.
1. 책도 소프트웨어다.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 책이 시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용이 ‘업데이트’가 된다는 점이다. 기존 책은 출간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내용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뀌어도 책에는 반영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여행 서적’일 것이다.
인터넷에 여행 정보가 많지만 ‘여행 서적’을 별도로 구입하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정보보다는 잘 정제 된 정보가 담겨 있고 판형에 맞게 한눈에 보기 편하게 편집 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지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 돼 골탕을 먹은 적은 사례가 적지 않다. 주요 관광지의 입장료나 문 열고 닫는 시간, 소개된 식당이 폐점 했는지 유지 됐는지 전화번호는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최신 개정판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믿고 따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매번 개정판을 사야하는 지도 의심스럽다.
‘파괴자들’과 같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도 마찬가지다. 최근들어 상황이 급변하면서 회사의 매출액과 이익, 상황이 매 분기마다 바뀌고 있다.
‘파괴자들’도 2013년 상반기에 출간 됐다면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인수,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 출시 등의 책의 내용에 사례로 등장할만한 굵직한 변화에 대한 내용을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정판에서 수정하고 보완하지만 초판을 구매한 독자들도 개정판을 구매한 독자들과 같이 ‘수정된 내용’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종이 책에서는 반영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업그레이드 또는 개정된 내용은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항상 최신 버전으로 독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독자는 내용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파괴자들의 디지털 버전은 구글 닥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 등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완벽한’ 제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것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안드로이드가 1.1, 1.2, 2.1, 2.3 등으로 업데이트 되듯 파괴자들도 disruptors 1.1, 1.1, 2.1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2. 독자에게 풍부한 멀티미디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종이책은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정보를 담을 수 없으며 페이지의 한계상 사진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QR코드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매번 QR코드를 스마트폰 앱을 실행해서 촬영해야 하는 불편이 있고 종이책에 들어간 QR코드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점도 활용을 꺼려하게 만든다.
‘파괴자들’ 디지털 버전은 사진이 더욱 풍부하게 들어가 있으며 동영상도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3. 독자와 저자, 독자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다.
독자들이 책 내용에 접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제 2차, 3차 콘텐츠가 형성될 수 없다는 점도 종이책의 한계다. 예를들어 종이책은 책 내용에 독자가 댓글을 달 수 없다.
종이책을 구매한 독자들은 서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거나 같은 분야에 종사,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나서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출판사가 만든 인터넷 포털의 카페를 이용하거나 저자의 개인 홈페이지 또는 팬 카페 뿐이었다.
이 방법도 책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매개로 독자와 저자가 만나서 공유하고 토론할 수 없다.
e북이나 전자책, 앱북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종이책을 뛰어넘는 경험을 주지 못했다. 왜냐면 종이책의 레플리카(복제품) 수준에서 크게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마크를 하고 밑줄을 그은 부분을 확인해주는 것으로는 독자와 저자의 양방향 소통이나 풍부한 멀티미디어 읽기 경험을 제공해줄 수 없다. 앱북의 경우에는 업데이트할 때마다 다운로드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다.
파괴자들은 디지털 버전으로 들어오면 독자들이 댓글을 달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파괴자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기자가 쓴 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댓글을 보고 다시 취재, 업데이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독자와 독자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는 독자와 저자 뿐만 아니라 독자와 독자가 서로 만났을 때 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오직 디지털만이 가능한 기능이다.
4. 각주가 없는 종이책
‘파괴자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종이책에는 주석(각주 또는 미주)이 달려있지 않다는 점이다.
종이책에 있는 각주를 들어가서 찾아보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각주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독자들이 원문이나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글의 원문이나 출처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읽기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 책은 논문이 아니다.
내용의 원문을 확인하거나 더 풍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책의 각주를 인터넷이나 태블릿으로 따로 접속해서 검색 엔진을 돌리거나 인터넷 창에 따따따(www)를 누를 필요가 없다.
디지털 계정에 들어오면 된다. 원문은 링크가 돼 있고 관련 내용의 동영상도 있어서 책의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커넥티드 북은 종이책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책에 담긴 콘텐츠를 독자들이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편리하게 언제 어디서나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저자와 독자가 소통하고 관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콘텐츠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출간하는 순간부터 책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며 독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이제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 믿게될 것이다.
‘파괴자들’을 완독하고 나면 저자가 왜 커넥티드 북 실험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될 것으로 본다. 책으로 쓴 내용을 실천했을 뿐이다.
이 것은 실천하고 실행하는 저널리즘, 인문학적 가치와 비즈니스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뜻하는 ‘안트러프러너리얼 저널리즘(Entrepreneurial Journalism)’이다. 파괴자들은 저널리즘 측면에서보면 ‘안트러프러너리얼 저널리즘’의 새로운 시도로 기록될 것이다.
*최초의 커넥티드 북은 출판사 ‘한스미디어’와의 공동 작업이었다. 출판의 혁신을 바라는 한스미디어의 결정이 없이는 이 같은 조그만 성과도 없었을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많은 생각(아이디어)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독서를 하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요?
디지털 도서 및 종이 책과 현존 SNS를 커넥팅 해주거나
읽으면서 바로바로 피드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아마존같은 기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