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I/O 2014 리뷰(2) … 구글과 삼성의 정치학
구글 “웰컴 백 삼성”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구글I/O에 등장한 `한일관’이라니.
애플 WWDC나 구글 I/O에 등장하는 프리젠테이션이나 시연에는 샌프란시스코(SF)가 자주 등장한다. 지도(맵)에 등장하는 지명은 대부분 샌프란시스코다. 당연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대회를 하기 때문이고 개발자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Bay Area)에 근무하고 살기 때문이다. 자갓(Zagat), 오픈테이블(OpenTable), 옐프(Yelp) 앱이 자주 시연되는데 식당을 찾을 때 이탈리안이나 스시, 타이 음식점이 자주 소개된다. 아무래도 개발자들이 자주 찾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구글 I/O 2014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일관’이 등장했다. 안드로이드 웨어를 설명하면서 핀터레스트에 `핀’한 식당을 알려준다는 내용이었다. 키노트를 지켜보는데 중간에 안드로이드TV를 설명하면서 2NE1의 `컴백홈’ 음악이 흘러나와서 또 반가웠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I/O 참석자들에게는 안드로이드 웨어가 내장된 삼성 기어 라이브와 LG G 와치를 준다고 했다(작년엔 크롬 북을 받았다). LG 유플러스 로고도 나오고(안드로이드 TV 협력사) 기아자동차(안드로이드 오토 협력사) 등 한국 브랜드가 유난히 많이 키노트에 보였다.
`구글에도 한류’라는 촌스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글이 새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한국 기업과 많이 협업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만큼 많은 한국인 개발자들이 구글과 파트너가 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꾸로 구글이 새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한국의 브랜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구글 개발자들이 샌프란시스코 한일관에 자주 가는 것도 이해가 간다(사실 엘카미노에 있는 산타클라라 `장수장’이나 `구이구이’가 더 괜찮다. 특히 구이구이는 한국에서도 가끔 생각난다). 구글 키노트에 한인 개발자가 등장하는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2014 구글 I/O에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발표가 집중됐지만 정착 차기 버전이나 넥서스 디바이스 등은 발표되지 않았다. 대신 `안드로이드 웨어’가 사실상 주인공이 됐는데 이 중에 `삼성 기어 라이브’가 새 디바이스로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웨어를 내장한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는 쉽게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시장이 한쪽으로 쏠려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올인’전략은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내놓을 줄은 몰랐다. 타이젠 기반의 `삼성 기어’를 선보인지 얼마 안됐기 때문이다.
`기어 라이브’는 이미 선보인 타이젠 기반의 스마트 와치 `삼성 기어’의 안드로이드 웨어 버전이다. 이미 시장에 나온 `기어2 네오’와 비슷한 스팩(카메라 없고 슈퍼 아몰래드 디스플레이, 300mAh 배터리)에 안드로이드 웨어 운영체제(OS)를 내장했다.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웨어 제품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안드로이드 제품(스마트폰, 태블릿)을 파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웨어러블’이라고 판단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지나친 구글 의존을 벗어나기 위해 웨어러블에서 승부를 보려 했고 이것이 스마트 와치 1탄인 `갤럭시 기어’에서 결별하고 타이젠 기반의 스마트 와치 `삼성 기어’가 나온 배경이다(삼성은 안드로이드 OS 기반 제품에만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쓴다. 윈도 기반 제품은 `아티브(ATIV)’ 브랜드를 쓴다)
갤럭시와 결별한 사실상 최초 브랜드가 `삼성 기어’ 였기 때문에 의미가 남달랐다. 별도의 팻네임을 붙이지 않고 과감히 `삼성’이란 브랜드를 내세웠다.
`삼성 기어’ 시리즈가 의미있었던 이유는 타이젠이 마침내 맞는 옷을 입었다는 의미 때문이었다.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OS인 타이젠(Tizen)은 모바일과 TV, 가전에서 사용하고자 했으나 생태계 구축에 사실상 실패했다. 타이젠폰이 나올 수도 있고 타이젠TV, 가전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외에 다른 사업자(업체)가 타이젠 기반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타이젠이 플랫폼으로 진화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이젠은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삼성전자의 의지와 달리 삼성만 쓰고 있다.
플랫폼 사고란 기본적으로 나보다(우리 회사보다) 외부에 더 많은 자원이 있고 더 똑똑한 사람들이 있어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웬만한 것은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하면 제 3자의 참여가 제한된다. 그래선 플랫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타이젠 기반의 웨어러블, `삼성 기어’는 TV나 스마트폰, 가전과 다른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다.
더구나 삼성전자 내외부에서 “웨어러블은 구글과 결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심지어 “웨어러블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최근까지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검토하고 고민했다(아직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그래서 `삼성 기어’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삼성 내부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구글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았다. 그래서 2013년 선보인 갤럭시S4에서는 구글과 결별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2014년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구글은 모토롤라를 레노보에 팔았고 삼성과 구글이 향후 10년간 특허를 공유하기로 하면서 삼성과 구글의 파트너십은 공고해졌다.
이는 삼성과 구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전략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가 의욕적으로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육성한 미디어솔루션센터(MSC)에서 개발한 앱이나 서비스가 하나둘씩 빠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앞으로 출시될 갤럭시 노트 시리즈나 갤럭시S6 등 플래그십 제품에서 삼성이 개발한 앱은 하나둘씩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인력들은 방향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를 강화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고 수많은 인력을 스카우트했지만 전략적인 판단 때문에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OS 독립의 꿈’을 타이젠으로 이뤄보려 했으나 내외부 분위기로 보면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 기어 라이브’로 인해 삼성이 웨어러블에서도 구글에 플랫폼을 의존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기어 시리즈(갤럭시 기어 포함)는 언론의 평가보다 괜찮은 제품이다. 하지만 안드로이드폰과 연동이 안되다 보니(지메일 등 구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사용성이 제한적이었다. 기어 라이브라니. 기존 기어는 라이브 하지 않다는 것인가. 어쨌든 삼성 기어 라이브는 안드로이드 제품이지만 갤럭시 브랜드를 쓰지 않는 최초의 제품이 됐다.
구글도I/O 2014에서 삼성 기어 라이브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번에 나온 디바이스 중 최초 공개 제품은 사실상 `기어 라이브’가 유일하다. 느낌으로는 구글이 “웰컴 백 삼성(Welcome back Samsung)”을 외치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제품을 팔아 더 큰 이윤을 남기려는 삼성전자의 전략적인 판단은 오케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면서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자 하는 목표가 점차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구글과 협력 관계가 깊어지면서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독립의 꿈’은 불가능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삼성, 탈구글과 인구글의 역사
삼성과 구글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자. 누가 악어인지 누가 악어새인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파트너다. 삼성전자는 구글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제품을 만드는 최대 OEM 업체다. 뿐만 아니라 크롬OS 기반의 노트북도 만든다. 2014년들어 삼성과 구글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2013년 3월 14일 삼성 언팩 에피소드 1. 삼성전자는 이날 갤럭시S4를 발표했다. 갤럭시S4에느느 삼성이 사실상 `탈구글’을 선언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다. 갤럭시S4 의 하이라이트는 성능 보다 삼성이 선보인 다양한 소프트웨어 였기 때문이다.
구글 번역기를 연상시키는 `S번역기’와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S보이스’ , 각종 센서와 악세서리를 통해 걸음수와 온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S헬스’ 등을 선보였다.
이날 처음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안드로이드 마켓을 연상시키는 삼성 앱스와 콘텐츠 허브인 S허브도 있다.
동 시간대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시청한 이날 언팩 행사의 첫 느낌은 `삼성, 구글을 지우다’였다. 행사 내내 신종균 사장은 구글이나 안드로이드라는 단어는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구글이 2011년 8월, 모토롤라를 인수하면서 하드웨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삼성전자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 삼성전자의 화두는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전환’ 이었다. 이 같은 위기감으로 독자적 서비스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자사 전략폰인 갤럭시S4에 대거 탑재시켜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다.
여기에 2013년 4분기 출시한 태블릿PC인 갤럭시 노트 12에는 자체 개발한 `메거진 UX’를 탑재하며 안드로이드 OS를 무색케 하기도 했다. 실제 메거진UX는 보면 안드로이드 버전이 젤리빈, 킷캣 무엇이 됐든 상관없어 보이게 만든다. 메거진 UX는 플립보드 스타일의 UX다. 윈도의 스타일UX도 비슷한 모양으로 이용자가 앱을 선택하면 넘어가듯 실행이 되는 UX다. 메거진UX는 삼성전자가 미디어솔루션센터(MSC)를 출범시킨 이후 고전하다가 만들어낸 최대 역작으로 보여진다.
삼성은 왜 `메거진 UX’를 개발했을까? 운영체제(OS)를 빌려쓰는 삼성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타이젠이나 파이어폭스 등 대안OS가 아닌 `서비스 플랫폼’ 전략이기 때문이다.
OS는 빌려쓰 돼 서비스를 OS위에 덮어서 OS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한마디로 미들웨어를 OS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글의 `크롬’도 서비스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구글은 OS 안드로이드가 있지만 웹 브라우저인 `크롬’을 사실상 OS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구글의 크롬북은 크롬으로 구동되는 노트북이다. 삼성전자는 크롬을 보면서 ‘서비스 플랫폼’이 OS가 없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기 시작했다. 삼성의 `메거진 UX’는 그 전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갤럭시 탭 프로와 갤럭시 노트 프로는 삼성전자가 2014년 태블릿과 B2B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야심작이다.
태블릿에 이어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5에서도 기존 터치위즈UI 대신 메거진UX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구글은 비상이 걸렸다. 세계 1위 안드로이드폰 제조사가 사실상 안드로이드를 지우려 하고 있으며 이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급박한 나머지 구글이 삼성에 메거진UX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구글 입장에서 보면 삼성의 OS 독립 시도가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했다. 삼성의 S번역기, S보이스 등의 서비스는 심지어 구글 특허를 상당히 침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사이 구글과 삼성에서 중요한 뉴스가 발표됐다. 구글은 2011년 사들인 모토롤라를 2014년 1월 레노보에 팔고 스마트폰 제조업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땠다. 이와 함께 구글과 삼성은 장기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10년간 서로 개발 `할’ 특허도 공유하기로 했다.
이는 구글과 삼성이 최소 10년간 혼자 독식하려 하지 않고 ‘같이 먹고살자’고 합의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구글은 삼성의 독자 행보가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삼성도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아무리 강화해도 1, 2년 만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결과물일까. 1년만인 2014년 2월. 삼성의 ‘탈구글’ 의지는 많이 퇴색됐다.
S5에서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는 강조하지 않았으며 워치온과 그룹 플레이 등 소소한 앱만 부각 시켰다. S5는 삼성앱스나 삼성SW 등을 주요 기능으로 크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신종균 사장은 갤럭시 스마트폰에 미리 탑재하는 삼성 자체 앱을 줄인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신 사장은 MWC2014 한국 기자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앱이 선탑재 돼 출시되다보니 많다는 지적이 있어서 이번에 정리를 하게 됐다. 이제부터는 많은 앱을 다운로드 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구글의 요청에 의해 삼성 스마트폰 콘텐츠를 축소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대해 “구글과 사이가 좋다.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글의 요청이나 삼성의 자체 판단이 아니다. 삼성 스마트폰에 삼성 자체 앱은 줄어드는 반면 구글 앱은 늘어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계 2억대가 판매된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삼성 음성인식 앱이나 S번역기 등을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구글 앱과 중복되기도 하고 사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삼성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디어솔루션센터(MSC)는 점차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정말 삼성의 하드웨어 제조사 탈피는 쉽지 않은가 보내요.
아! 한가지 갤럭시S5에 대한 언급이 마치 미래 일 처럼 되어 있는데, 갤럭시S5 이미 출시 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