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너무 중시한다”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본다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은메달, 동메달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나 월드컵에서 승리와 16강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빠른 산업화를 거치면서 결과를 중시한 나머지 대강대강하는 과정이 온갖 대형 사고를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건 아니다. 결과도 결과 나름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전이 남았다. 강호 벨기에를 두점차로 이기고 알제리-러시아전을 봐야 한다. 기적이 필요하다.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이 5%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온 국민이 16강. 16강 하면서 결과만 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손흥민 선수가 알제리전에서 한골을 넣긴 했지만 국민들이 `영웅’ 수준의 대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정말 열심히’ 뛰었고 실망스런 결과에 분해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도 그랬다. 멕시코에 1-3 역전패하고 네덜란드에 오대영(0-5)로 진 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됐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최선을 다해 1-1로 비기고 마치 승리한 것처럼 대접을 받았다. 돌아오는 김포공항에서 선수들은 비난 대신 환대받았다.
두 경기에서 진 것보다 마지막 경기에서 감독도 없는 상황에서 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발휘한 것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붕대투혼’을 보인 이임생 감독, 유상철의 골을 어시스트한 하석주 감독을 인터뷰를 했다. 이임생 감독은 현재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에서 감독을 하고 있다. 이관우 선수도 홈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등 현재 5~6명의 선수가 싱가포르 리그에서 뛰고 있다. 하석주 감독은 K리그 전남드래곤즈를 맡아 현재 팀을 4위까지 끌어 올렸다.
두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감독은 정말 국민들이 보고싶어하는 것은 단순하게 16강 진출이 아니라 선수들의 투혼, 살아 숨쉬는 전략 그리고 스토리와 드라마가 있는`뷰티풀 게임’인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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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진정 보고 싶어하는 것, 그것은 투혼”
“스페인도 떨어졌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끝까지 싸워주길”
16년전 벨기에戰 주역, 하석주·이임생 인터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벨기에전. 홍명보호는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2점 차이 이상으로 승리를 거두고 러시아-알제리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확률적으로 16강 진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기억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 최선의 결과를 보인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워주던 모습, 불꽃 투혼을 발휘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모습 속에서 국민들은 희열과 감동을 느낀다.
예선 1차전 맥시코와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1-3으로 역전패했고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 전에서는 오대영(0-5) 패배로 밤잠을 설치며 TV 앞에서 승전보를 기다리던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겼다. 국민의 실망은 분노로 이어졌고 차범근 감독이 대회 중 경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선수들은 마치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마지막 경기상대는 다름아닌 벨기에였다. 앞선 두경기에서 2무를 거뒀던 벨기에는 한국과 경기에서 가볍게 승리해 16강 진출을 확정 지으려했다. 감독이 경질되고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없던 한국팀,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던 벨기에. 누가봐도 결과는 뻔했다. 여기에 한국팀은 전반 6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후반 26분엔 세트피스 상황에서 하석주의 어시스트를 받은 유상철이 동점골을 뽑는 등 상대를 강하게 압박, 세계인들을 놀하게 했다. 특히 이임생은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눈이 찢어졌음에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상대 공격수를 제압하는 등 눈물겨운 ‘붕대투혼’을 발휘, 한국 국민은 물론 이 경기를 지켜본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투혼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은 대표팀이 1무 2패로 탈락했음에도 귀국하는 김포공항에서 한국 대표팀을 뜨겁게 환영했다.
지금 홍명보호도 1998년 선배들의 투혼을 발휘해 기적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붕대투혼’의 주인공인 이임생 감독(현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벨기에가 강팀이라곤 하지만 축구는 매우 예민한 운동이다. 실수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기도 한다. 조직력의 강점을 살려서 개인적 실수를 상대보다 줄인다면 우리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무서울게 없다”고 밝혔다.
‘붕대투혼’에 대해서도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가 아니니 그정도는 해야 한다”며 “축구는 기술, 전술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력만으로도 안된다. 이런 요소들이 하나가 됐을때 강팀이 된다. 한국은 기술 체력 전술보다 강한 정신력이 다른 팀보다 우위에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벨기에전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가 선제골을 빨리 넣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 우리가 선제골을 넣으면 승리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지난 2003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수원 삼성 코치 등을 거쳐 현재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싱가포르 리그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FA 우승 두번, 리그 준우승 2번을 했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도 진출시키고 지난해는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는 등 싱가포르의 히딩크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감독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싱가포르로 왔지만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 같이 선수생활하던 황선홍, 최용수 감독 등과 함께 경쟁하고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벨기에전 1-1 무승부를 기록할 때 유상철의 골을 어시스트한 하석주 감독(전남드래곤즈)도 ‘투혼’을 강조했다. 하 감독은 “알제리전에서 크게 패해 실망이 컸지만 손흥민 선수는 한골을 넣은 것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국민들이 위로받지 않았나”며 “오는 27일 벨기에전에서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하 감독은 “1998 월드컵때 벨기에전보다 지금이 상황이 더 좋다. 그때는 탈락이 확정됐지만 지금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고 한국은 월드컵 4강과 원정 16강 경험도 겪었다. 한국이 벨기에를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하 감독은 현재 K리그 감독으로 재직 중이기 때문에 박주영, 정성룡, 곽태휘 선수 등 고참 선수들의 부진이 안타깝다고 했다. 하 감독은 “지금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데 대표팀의 중심축을 이루는 고참들이 해주면 더 좋을 것이다. 부담감은 내려놓고 자존심과 명예는 지키자는 각오로 싸워달라”고 강조했다.
손재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