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딜레마 … 언제 바꿀 것인가.

2014-06-23 04:37 오전
손재권

<칠레전에서 패배한 후 고개를 숙인채 피치를 빠져나가는 스페인 선수들. 
이 장면. 익숙치 않다. 지난 4년간 거의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2011년 4월. 노키아 본사 에스포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본사에 가서 노키아 부회장인 에스코 아호를 인터뷰했다. 그는 핀란드 총리를 지낸 인물로 노키아의 전략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 부동의 1위. 삼성전자, LG전자는 노키아의 눈치를 봤고 그들의 `플랫폼 생산 방식’을 따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 노키아의 고민은 기존 휴대폰 사업으로는 더 이상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애플 아이폰은 점유율은 높지 않지만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고 있었다. 노키아의 선택은 `서비스’였다. 이메일 서비스를 내놨고 지도(나브텍) 회사를 인수했으며 `오비스토어(Ovi Store)’라는 앱스토어도 오픈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대응에 뒤쳐졌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내부 사정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방향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힘있게 밀고가지 못했다. 에스코 아호 부회장은 “우리는 이제 서비스 회사다. 하지만 여러 규제도 있고 회사 내부 사정도 있어서 쉽게 전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여전히 아호 부회장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노키아는 지금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되고 브랜드가 없어지게 돼 `시대에 뒤쳐진 회사’ 취급받고 있지만 직접 취재한 경험으로는 변신에 능했던 회사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변화에 뒤쳐져서가 아니다. 변화를 하기 싫어서도 아니다. 승자의 딜레마다. 극강의 위치에 있으면 변하고 싶은데도 변신하기 어렵다. 과거의 영광은 오늘의 변화에 방해가 된다. 
변해도 욕먹고 변하지 않아도 욕먹는다. 
즉, 언제 바꿀 것인가(Winner’s Dilemma : When to Change)’의 이슈다. 
 
 스페인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두 경기만에 탈락했다. 전 대회 우승팀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팀의 탈락. 종종 전대회 우승국이 부진한 경우가 있었으나 첫 경기에서 라이벌 네덜란드에게 5-1이란 스코어로 대패하면서 충격이 컸다.
 전대회 우승팀이 탈락하더라도 최소한 마지막 경기에 경우의 수까지는 갔는데 스페인은 패널티킥으로 한골만 넣고 7골을 먹으며 두경기만에 탈락이 확정됐다. 높은 패스 성공률을 중심으로 완벽한 점유율 축구, 티키타카 및 제로톱 전술이 최근 몇년간 크게 유행시켰으며 스페인을 개최국 브라질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은 축구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스페인의 탈락을 두고 많은 분석이 오가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 주역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세데 교체에 실패했고 선수들의 동기 부여가 안돼 있는데다 대회 마지막까지 챔피언스 리그를 뛰고(레알 마드리드, AT 마드리드) 온 선수들이 많아서 체력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 귀화한 스트라이커 디에고 코스타가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 등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이 멤버로 유로2000도 우승, 아트 사커의 전성기를 알렸다. 하지만 이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을 해서 일찍 짐을 싸야 했다>



 전대회 우승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사례는 `의외로’ 많았다. 오히려 승자의 저주로 불러야할 판이다. 
 지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가 조별 예선 탈락한 것을 시작으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브라질, 2002년 한일 월드컵 프랑스가 우승 뒤 다음 대회에서 조별 예선 탈락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2006 독일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가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스페인은 20번의 월드컵 중 역대 5번째로 우승팀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사례가 되고 말았다. 전대회 우승팀이 다음 대회에서는 조별리그 탈락할 확률이 25%나 되는 셈이다. 

 특히 이번 스페인 탈락은 지난 2002년 대회 프랑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 당시 프랑스는 1998년 자국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유로 2000에서도 우승한데다 지단, 트레제게, 앙리, 시세 등 극강의 멤버들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개막 직전에 열인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지단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가 주목할 때, 전성기 멤버들이 즐비할 때, 수많은 성공 공식을 쓰고 있을 때 위기는 찾아오고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아트 사커’ 프랑스가 침몰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축구는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와 감독이 하는 것이다. 예측이 아니라 실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전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는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겨진 파라과이, 슬로바키아, 뉴질랜드와 한조였는데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많은 축구 팬들은 놀랍다 못해 어이없어 했다. 
 스페인이 이 같은 `승자의 딜레마’를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신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스페인 델 보스케 감독은 월드컵 및 자국 리그, 챔피언스 리그 등을 여러차례 재패하며`우승 공식’을 쓴, 이길 줄 아는,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멤버들을 뒤로하고 경험은 적고 팬들도 없으며 세계적으로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기부여가 된 젊은 피를 수혈했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언제가 적기였을까?
 갑작스런 세대교체는 꼭 해야 하는 것일까? 세대교체에 저항하는 여론(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변화와 혁신은 최악의 순간이 와야 하는 것일까? 이기는 중간에도 할 수 있는 것일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바이에른 뮌헨(전 FC바르셀로나) 감독 펩 과르디올라가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 전기에도 나오지만 잡스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이 회사 매출의 80%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아이팟 매출을 잠식할 수 있는 아이폰 개발을 서두른다. 주변에 많은 참모들이 스티브 잡스를 말렸다. 하지만 잡스는 “우리가 스스로를 잠식하지 못하면 남들이 우리를 잠식할 것이다”는 말로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는 변신과 변혁의 시기가 왔음을 직감하고 이를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 사실상 재창업 수준으로 애플을 바꿔놨기 때문에 오늘의 글로벌 1위 기업 애플이 가능했다. 실제 스티브 잡스가 창업했던 초기 애플과 2014년 애플은 다른 회사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는 회사 매출 비중의 80%를 차지하는 패키지 소프트웨어, 윈도 시리즈를 버리지 못했다. 경쟁사들이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로 움직일 때 MS는 SW 라이언스 유지비와 불법 소프트웨어 추방에 열을 올렸다. 매출을 지키가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 
 

<언제 바꿀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스페인식 `티키 타카’를 완성한 펩 괴르디올라는 FC바르셀로나를 2009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라리가 우승, 국왕컵 우승 등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10여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등 FC바르셀로나의 최전성기를 이끌다가 2011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2012년 시즌 종료 후 갑작스레 사임을 발표했다. 괴르디올라 감독이 FC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한 4시즌(4년) 동완성시킨 `티카타카’로 바르샤도 지쳤고 스스로도 지쳤다. 변신해야할 때 팬들의 성원에도 과감히 그만두고 한 시즌을 휴식하고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 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펩은 자신도, 스스로도 `언제’ 바꿔야 했던 것을 알았던 것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두경기만에 탈락한 스페인은 `승자의 딜레마’에 빠진 마지막 팀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축구고 또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승자의 딜레마에 벗어나려는 회사가 많다. 한계 돌파를 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변화는 `시스템’인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이다. 축구에서 2회 연속 우승이나 비즈니스에서 승리 공식을 계속 쓰기 위해 재창업에 가까운 변신이 필요하고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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