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을 해야지요 슛을”
”아 … 왜 슛을 하지 않나요. 저 순간에 왜 공을 돌리나요”
”패널티박스 근처에서는 슛으로 결정을 지어줘야 합니다. 뺏기면 바로 위기가 와요”
한국 국가대표팀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전에서 TV 해설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시청자들도 답답하기 마찬가지였다. 패널티박스 중앙에서 수비수보다 공격수가 많았음에도 슛을 하지 않고 패스하는 장면에서 한숨 쉬는 축구팬들이 많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과거처럼 `참가에 의의’를 두거나 `경험 쌓기’에 주력하는 팀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16강, 8강 또는 그 이상을 원하는 팀이라면 공격의 순도를 높여야하고 더 많은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 결과에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던 이유는 알제리, 벨기에전 패배가 단순 패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알제리전에서는 전반전에 단 한번의 슈팅도 해보지 못했다. 벨기에전에서는 선수가 한명이 퇴장당해 10명이 싸우는 벨기에팀에 후반에 한골을 내줘 0-1로 졌다.
한국 대표팀 성과는 통계적으로는 최악은 아니었다. 유효슈팅 60%, 뛴거리 111km, 패스성공률 70%, 패스시도 1150회 등이다. 일본이나 16강에 진출한 알제리와 비교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시청한 국민들이 느끼는 답답함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가장 답답한 장면은 좋은 찬스에서 공 돌리기를 한 순간일 것이다. 한국팀의 경기를 `눈치축구 (Peer Pressing Football)’라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으로 상대선수의 볼을 뺏는 것이 아니라 전후방 가릴 것없이 강한 눈치보기에 대한 압박으로 결정적 순간에 패스를 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TV에서 본 연습하는 장면에서 본 선수들은 모두 호날두와 메시 같았다. 절묘한 프리킥이 들어가고 드리블에 이은 슈팅도 성공 확률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연습이 아닌 `본게임’에 들어가면 달라진다. 그림같은 슛은 보이지 않고 열심히 패싱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볼을 뺏겼다. 볼을 잡으면 전진패스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 진영으로 볼을 돌렸다(백패스).
역습 순간에 롱 패스로 찔러주지 못하고 패스 미스하지 않으려 오른쪽 왼쪽으로 공을 넘겼다.
패널티박스에 와서도 공격수가 더 많은데 슈팅을 하지 않고 완벽한 찬스를 노리다 공을 뺏기거나 흐름이 끊겼다.
한국 선수들은 열심히 뛰다가 결정적 순간에 왜 슛을 하지 않고 공돌리기를 하는 것일까? 수비수를 체치는 개인기가 부족해서일까? 슈팅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신문선 대표(성남시민구단,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선수들이 어릴때부터 뿌리내려진 `실수를 두려워 하는 문화’를 꼽았다.
그는 “한국은 삼성전자와 같은 문화가 있다. 하라 그러면 결국 한다. 죽기살기로 뛰는 것이 한국팀의 특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보수적 생각으로 축구에 임하고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드리블하다가 실수하면 팀 내 선수, 감독, 다른 학부모들이 맹비난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과인 등 유명선수도 메시 중심으로 플레이한다. 브라질은 네이마르 중심으로 플레이 하는 것 등이 용납이 된다. 리오넬 메시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개인플레이할 때 바로 동료 선수들이나 학부모의 비난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포르투갈을 망친 선수가 페페다. 페페가 불필요한 퇴장으로 독일에 참패했고 이 것을 조별리그 내내 극복하지 못했다. 이 때 호날두 표정은 어땠나. 세계적인 슈퍼스타인데 퇴장당한놈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표정은 없었다. 페페도 고개를 숙이기는 커녕 당당히 그라운드에서 걸어 나왔다. 이런 존중이 안되면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여론은 페페가 팀을 망친 선수로 비난할 수 있다. 슈팅을 잘못하면 맹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이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가 하는 것이다.
실제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유일하게 `건진’ 선수로 평가받는 손흥민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손웅정씨가 드리블, 볼 트래핑, 정확한 슈팅 등 기본기를 가르친 스토리로 유명하다. 초중등 선수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게임에 뛰면서 기술을 배울 때 손흥민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기본기를 다졌고 지금은 한국 국가대표의 희망이 됐다.
한국 대표팀의 총체적 문제는 `실력’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문화’였을지 모른다.
부족한 실력에도 월드컵 4강에 가고 원정 16강도 진출했던 역사가 있는 대표팀 아닌가.
지금 한국 축구는 세계 수준으로 성장하는데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닥쳐 있다. 한단계 올라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엔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없어 `울렁증’ 때문인 줄 알았다. 월드컵 경험이 없어서인줄 알았다.
축구협회의 무능 행정, 전략 전술이 부족한 감독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해줄 스트라이커나 플레이 메이커가 안나오는 것이 눈치를 보며 튀지 않기를 바라는 문화, 한번 실수하면 죄인으로 낙인찍는 문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 관료적 문화가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집단적 사고 체계. 보이지 않는 힘. 멘탈 그리고 문화다.
월드컵 해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영표 선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축구선수에게 멘탈이란 자신보다 강한자 앞에 섰을때나, 혹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앞두고 밀려오는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낼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약한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 경기장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 할수 있는 능력.. 또 졌을때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묵묵히 이겨내는 것도.. 이겼을때 쏟아지는 칭찬을 가려 들을 줄 아는 것도 모두 멘탈에 속한다. 심지어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이 곧 경기장 안으로 이여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멘탈이다. 그렇기에 멘탈은 경기 당일날 “한번 해보자!” 라고 외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멘탈은 훈련장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만들어진다.멘탈을 언급하는 이유도 박빙의 경기에서 경기 결과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은 기술이나 전술이 아니라 바로 멘탈에 있다는걸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Dare to fail) 문화는 축구 뿐만 아니라 한국이 창의적 국가로 올라서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꼽히고 있다. 단 한번의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낼 수 없고 지속적인 슈팅 시도가 결정적 골을 만들어 내듯 비즈니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해야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성공 비결에 대해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문화’를 꼽을 정도로 핵심 정신이다.
이는 축구나 국가, 비즈니스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혹시 우리 인생 이야기는 아닐까. 인생도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결정적 슈팅 찬스에서 슈팅하지 하지 않고 눈치보며 공을 돌리는 것은 아닐까.
`안전한 플레이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There’s no greater danger than playing it safe)’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나이키가 전세계 론칭한 광고(Risk Everything)의 메시지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광고에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 브라질의 네이마르 다 실바가 등장하는데 국가 대표로서 그들이 직면한 책임감 그리고 그들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기대는 엄청난 부담, 압감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세 선수의 비장한 모습이 나온다.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그들 앞에 놓인 중압감에 담대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중압감이란 하나의 동기부여이며 강력한 승리의 요인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순간은 모든 선수가 평범함을 벗어나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건 과감한 도전을 펼쳤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나온 멋진 슛은 우연인 것 같지만 모두 선수들이 피나는 연습을 통해 과감하게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안전한 비즈니스 만큼 위험한 비즈니스는 없다.
안전한 삶 만큼 위험한 삶은 없다.
실패없이 위대함은 없다.
이것이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받아야할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