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스티브 잡스를 뭉갰다(Elon Musk crushes Steve Jobs).”
시장조사 전문기관 CB인사이츠가 주요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의 제목이다. 이 회사는 지난 10월 한 달간 약 21만 명의 경영자, 애널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경영자, 창업자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설문을 진행, 그 결과를 발표했다.
후보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레리 페이지 알파벳(구글 모회사)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CEO 등 72명이었다. 물론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겸 CEO도 있었다.
4강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vs 빌 게이츠 MS 창업자 겸 전 CEO’ , ‘스티브 잡스 vs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CEO’가 격돌했다. 그 결과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가 결승에서 붙었고 결국 약 한 달 넘게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일론 머스크가 스티브 잡스를 누르고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 설문은 그들의 경영성과나 의미 등을 분석한 학술적 결과라기보다는 설문 응답자의 직관에 의존, 조사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결과는 그만큼 2016~2017년을 사는 경영자, 애널리스트들의 머릿속에 ‘일론 머스크’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일론 머스크가 금세기 ‘최고의 혁신가’ 반열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특히 20~30대 초반 세대를 일컫는 ‘밀레니얼’이나 현재 10대를 지칭하는 ‘Z세대’들에겐 일론 머스크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스티브 후?(Steve Who?)”라고 물을 정도. “스티브 잡스가 누구지?”라고 묻는 것인데 스티브 잡스의 혁신을 눈앞에서 보지 못했거나 동시대 인물이 아닌 이들에게는 스티브 잡스는 과거의 인물이고 일론 머스크가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개척하는 최고의 경영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 일론 머스크는 스티브 잡스(애플), 빌 게이츠(MS) 등을 잇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금세기 최고 혁신가, 경영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100% 전기차 테슬라 ‘모델S’ 로 자동차 시장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한 것뿐 아니라 솔라시티(태양광), 스페이스X(우주개발) 등 3개 회사를 동시에, 성공리에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언론과 대중의 이목을 집중 시킬 만한 이벤트와 미래 비전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현재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솔라시티’, 그리고 ‘스페이스X’ 등 3개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동시에 맡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테슬라와 솔라시티가 합병, 하나의 회사가 돼 경영하는 회사는 2개가 됐지만 경영해야 하는 사업의 규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기차, 태양광, 민간 우주 개발 등 얼핏 ‘돈이 안 돼 보이는 사업’을 동시에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2016년 들어 일론 머스크가 시도한 도전은 ‘대단하다’, ‘우주적이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다. 그는 과학자나 교수가 아니라 ‘사업가’다. 과학자는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거나 과학적 사실을 발견, 인류의 문제를 일거에 돌파하며, 교수들은 과학적 이론으로 시대의 화두를 제시한다. 일론 머스크의 뛰어난 점은 혁신적 기술 개발, 시대의 화두는 물론 ‘비즈니스 모델’까지 제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2016년 3분기 실적발표에서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 테슬라를 창사 이후 두 번째 흑자로 돌아서게 하면서 자신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일론 머스크의 승부수 ‘테슬라와 솔라시티 합병’
올해 일론 머스크가 내놓은 가장 큰 승부수는 ‘테슬라와 솔라시티 합병’이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솔라시티 주식 22%를 소유한 대주주인데 테슬라가 솔라시티를 26억달러(약 2조9718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해 논란을 야기했다.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솔라시티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부채도 많기 때문에 테슬라 주주들의 반대가 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를 전기차 회사가 아닌 ‘에너지 회사’로 탈바꿈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테슬라와 솔라시티 합병은 에너지 솔루션 회사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주주들을 설득했다.
그뿐 아니라 지난 10월 28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설스튜디오 내 <위기의 주부들> 세트장에서 태양광 패널이 내장된 지붕 타일을 공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타일은 기존 금속 소재의 태양광 패널과 달리, 유리로 만들었는데 외관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 획기적 아이디어였다.
또한 지붕 타일 가격이 기존 제품에 비해 저렴하기까지 하다. 낮 시간에는 집에서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한 다음 가정 내 가전제품, 열기구뿐만 아니라 테슬라 모델S 충전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일론 머스크는 네바다 사막에 약 5조6800억원을 투자, 세계 최대 배터리 공장 ‘기가 팩토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구상대로 된다면 ‘테슬라’는 전기차 브랜드가 아니라 곧 명실상부한 신재생 에너지의 종합 솔루션 회사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태양광 루프가 내장된 테슬라 모델S가 머지않아 시중에 공개될 것이다. 태양광 패널을 달고 자체 충전하는 자동차는 더 이상 미래 자동차의 모습이 아니다. 테슬라 모델S는 일반 기구 설계 및 도시의 그림까지 장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결국 테슬라 주주들은 솔라시티 합병을 지난 11월 17일 85%가 넘는 찬성표를 던지며 일론 머스크의 비전을 응원했다.
▶화성 정복 계획도 비즈니스
일론 머스크는 지난 10월 27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국제우주대회에서 화성 이주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무인탐사선을 발사하고 2022년에 첫 번째 이주자들이 화성으로 떠난다는 것. 일론 머스크는 “우리 세대는 화성에도 인류가 사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션 투 마스’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 및 관련 기업에도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바마 대통령도 “화성 탐사 계획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화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낙 담대한 계획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결국 그의 비전에 매혹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론 머스크가 “화성으로 가자”고 지속적으로 외치고 있는 이유다. 왜 일론 머스크는 굳이 화성에 가자고 할까. 지구가 멸망한다고 생각해서일까. 화성이 진정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해서일까? 사실 ‘미션 투 마스’ 계획의 핵심 이유는 일론 머스크의 사업체 ‘스페이스 X’ 때문이다. 화성으로 가기 위해선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우주선’이 있어야 하는데 스페이스X가 그 사업을 하고 있다.
실제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 계획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 명당 100억달러(약 11조원) 정도 소요되지만 앞으로 20만달러(2억2000만원)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발사체’를 재활용하는 계획 때문인데 그동안 한 번 쓰고 버리던 로켓, 우주선을 재활용하고 로켓 연료도 액체수소 대신 저렴한 메탄을 쓰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의 중심이 ‘스페이스X’다. 화성 이주 계획에 관심이 모일수록 그의 스페이스X도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고 은행 대출, 추가 투자자금 마련도 상대적으로 쉬워질 수밖에 없다.
테슬라 매직 ‘자동차는 제조업 아닌 서비스업’
테슬라는 한국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없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바로 ‘서비스 자동차(Car as a Service)’ 모델이다. 기존 자동차 회사는 ‘조립 생산’ 능력을 가진 회사다. 도요타, BMW, 포드, GM,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는 모두 전 세계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자체 공장에서 자신의 브랜드로 조립, 글로벌하게 판매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를 직접 판매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직판도 하지만 북미 시장 등에서는 자동차 판매 전문 회사, ‘딜러’를 통해 판매한다. 완성차 회사들은 판매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AS)도 외주에 의존한다. 비용 구조를 단순하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 하지만 완성차 회사의 문제는 누가, 언제, 왜 자동차를 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소비자들은 차 부품을 사기 위해 자동차 회사로 가진 않는다. 완성차 업체로서는 ‘고품질 자동차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조업’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다르다. 차 제조뿐만 아니라 판매, 애프터서비스도 직접 운영한다. 이는 ‘고비용’ 구조를 만드는 단점이 있는 반면 소비자를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론 머스크가 만든 ‘테슬라 매직’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차 한 대를 팔면서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테슬라 소유주는 차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어 9만달러짜리 테슬라 모델S의 배터리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오토 파일럿 등의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선 별도로 90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테슬라 소유주는 모델S를 구매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능이 추가될 때마다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2년에 한 번씩 교체하지만 자동차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전기차(모델S, 모델X)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고, 테슬라 입장에서는 ‘캐시 머신’이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7월 발표한 향후 10년간 달성할 ‘마스터 플랜 2’에서 결국 테슬라의 최종 단계는 ‘자율 주행’을 넘어 ‘차량 공유’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머스크 CEO는 “진정한 자율주행이 규제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으면 운전자들은 차량이 필요할 때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게 된다. 일하는 중이나 휴가 중에 버튼 하나만 눌러 공유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차 소유주를 태우지 않고도 스스로 도로에 혼자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테슬라 소유주는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우버’처럼 타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2017년쯤 ‘테슬라 네트워크’라는 우버, 리프트와 같은 공유 자동차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테슬라는 이를 ‘윈윈’으로 판단하고 있다. 테슬라 입장에서는 자동차를 빨리 교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주차장에 있을 시간에 도로를 돌아다니면 자동차 수명은 짧아진다.
대신 소유주는 그 시간에 돈을 벌어 새 차를 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자동차는 보통 5~10년 정도 소유하는데, 이를 줄이면서 신차 교체 주기를 짧게 하는 구상이다. 테슬라는 이제 ‘서비스’ 회사다. 일론 머스크의 구상은 이제 막 실현되고 있을 뿐이다.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