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다 일이 많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결혼 초기엔 아이를 낳지 말자고까지 했다. 나는 바쁘고 힘든 기자생활. 와이프는 육아 걱정. 아이를 잘 기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생활 7년째. 우리의 사랑은 깊어지고 이제서야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준비한다고 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차례 기다렸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5월. 오래 기다리던 임신 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아이를 ‘봄’이라고 불렀다. 세상을 올바로 보고, 이웃을 보듬을 줄 알며 무엇보다 따뜻한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추운 겨울 끝에 기다리던 봄이 오듯, 우리에게 봄이도 봄날과 같이 왔다. 그리고 미국으로 연수가 확정(SBS문화재단)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임신 소식을 들은후 3일 만이다. 기자생활 10여년 만에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스탠포드대학에 가고 싶어했고 많이 준비했다. 병원에 가서 “아이가 잘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이번 여름에 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2012년 상반기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하는 일도 힘들었고 의욕이 떨어지고 있었으며 아이는 오지 않고 연수도 확정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하지만 봄이가 온 후 많은 것이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를 ‘복봄’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부럽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큰 걱정거리였다. 한국 산부인과는 커녕 병원도 익숙하지 않은데 외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떨까? 비용은? 보험은? 병원은? 산후조리는? 중간에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끼리 잘해낼 수 […]